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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AI 회의록 도구는 무엇이 달랐을까?

— AI 시대 좋은 제품의 조건은 AI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AI 입니다.

#289 진대연 12분 읽기

9월 초에 그래놀라(Granola)가 한국어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9월 2일에 22개 언어를 한꺼번에 추가했는데 한국어가 그 안에 드디어 들어갔죠. 설정에서 언어를 「Multi-language」로 바꾸면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어로 적어도 그대로 동작합니다.

저는 이 소식을 보고 기능보다 다른 게 궁금해졌습니다. AI 회의록 앱은 정말 많은데 어떻게 '그래놀라(Granola)'는 이 시장의 선두가 됐을까요.

AI 생성 이미지

AI 회의록 춘추전국시대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정말 많은 AI 회의록을 봤습니다. 네이버의 클로바노트, 실시간으로 글자가 올라오는 티로, 노션에 기본으로 들어간 AI 회의 노트, 타임리스, 스펠러까지. 해외로 가면 Otter·Fireflies·Fathom이 있고, 줌과 구글 미트와 팀즈는 아예 회의 프로그램 안에 요약 기능을 넣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AI로 회의를 받아 적는다」는 것 자체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다 비슷한 모델에, 녹음을 텍스트로 바꾸는 기술 역시 어디에나 널려있고, 요약은 프롬프트 몇 줄이면 됩니다. 흔히 말하는 해자(moat)가 없는 시장이죠.

그런데 그 시장에서 그래놀라는 올해 3월에 1억 2,500만 달러를 투자받으면서 기업 가치 15억 달러를 인정받았습니다. 1년 전 시리즈 B 때 2억 5,000만 달러였으니 1년 만에 6배가 된 것이죠. 고객사 목록에는 Asana, Cursor, Lovable, Mistral 같은 회사들이 있습니다. AI를 누구보다 잘 아는 회사들이 회의록만큼은 그래놀라를 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저는 그 답이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사람에게 남기고, 무엇을 AI에게 넘겼는가」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AI 생성 이미지

AI는 그 회의에서 '뭣이 중헌디' 모릅니다

기존 AI 회의록의 방식은 거의 같습니다. 회의가 시작되면 봇이 들어오거나 녹음이 켜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AI가 듣고, 끝나면 AI가 정리합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그게 장점으로 보였죠.

그런데 이 방식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AI는 그 회의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요함은 말 속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회의를 들어도 저에게 중요한 것과 옆자리 동료에게 중요한 것은 다릅니다. 지난주에 어떤 결정이 있었는지, 이 사람과 저번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지금 내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에 따라 같은 문장의 무게가 달라지죠. AI는 그 맥락을 모른 채로 「골고루」 정리합니다. 그래서 다 적혀 있는데 정작 내가 찾는 건 없는 회의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우리는 원래 회의 내용을 전부 기록하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회의 중에 우리가 노트에 적는 것은 잊으면 안 되는 것 몇 줄이었죠. 결정된 숫자, 누가 언제까지 하기로 했는지, 그리고 상대가 말하는 동안 떠오른 내 생각. 그 몇 줄이면 충분했고, 부족한 것은 딱 하나였습니다. 적느라 대화를 놓치거나, 대화에 집중하느라 못 적거나. 둘 중 하나를 늘 포기해야 했다는 것이죠.

그래놀라는 이 두 지점을 엮었습니다. 그래놀라를 켜면 봇 회의에 직접 들어오지 않습니다. 화면에는 그냥 메모장 하나가 뜹니다. 회의 중에 우리는 평소처럼 중요한 것만 몇 단어씩 적습니다. 전부 적을 필요가 없으니 대화에 집중할 수 있죠.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AI가 녹음된 전체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적어 둔 몇 줄을 기준으로 살을 붙입니다. 내가 「예산 확정?」이라고 적어 놓았으면 그 부분의 대화가 자세히 풀리고, 내가 적지 않은 잡담은 뒤로 밀립니다. 즉 무엇이 중요한지는 사람이 정하고, 그 중요한 것을 빠짐없이 채우는 일은 AI가 하는 것이죠.

제 노트 하나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8월에 했던 커피챗입니다. 회의 중에 제가 적은 것은 상대가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도의 짧은 줄 몇 개였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그래놀라가 그 줄들을 정리된 문장으로 채워 놓았고, 아래로는 제가 적지 않았던 주제들이 따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줄에 마우스를 올리면 그 줄이 어디서 나왔는지가 뜹니다. 그 대목의 대화 요약과, 상대가 실제로 한 말이 화자와 시각과 함께 붙어 있죠. 「이 문장을 AI가 왜 이렇게 썼지?」를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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